강따라 길따라/가볼만한 길

김해 봉황동 유적, 국립김해박물관을 가다(2편)

부산지방국토관리청 2012. 12. 28. 12:46

길은 뻗어 있는 공간이다. 이곳과 저곳을 이어주는 연결로이다.

실제로 길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이루어졌으며 문명과 문물의 교류가 이어져 왔다.

인류사 속에서 세계를 지배한 민족의 공통점은 일찍이

이 길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막대한 땀과 노력을 쏟아

길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오늘 전편에 이어 금관가야의 발생지 김해 '가야의 거리' 그 두번째 이야기를 소개한다.

 

가야의 거리는 찬란했던 가야해상무역의 영화를 간직한 해반천과

봉황동유적, 수로왕릉, 국립김해박물관을 아우르는 도로이다.

 

 

사진속 게시물에서도 보시다시피 가야의 거리는 가로 공원의 성격으로 3단계에 걸쳐 조성되었다.

 

1단계는 연지교에서 경원교 구간으로 과거의 시간성을 기본개념으로 조성하였고

2단계는 가야문화의 발전의 장을 주제로 경원교에서 봉황교 구간에 이벤트광장과 철기문화를 상징하는 모형분수 그리고 야간경관조명 등을 설치하여 가야문화의 번영을 상징하였다.

3단계는 가야 유적을 연결하는 문화의거리를 완성한다는 취지하에 실질적인 관문에 해당하는

전하교에서 봉황교에 이르는 구간을 생활의 장이라는 주제로 고상가옥과 포구를 상징하는 못, 다락논을 조성하여 봉황동 유적과 연계하였다.

 

 

 

가야는 창원 다호리 무덤에서 붓과 함께 글씨를 지우는데 사용된 손칼이 출토되어

기원전 1세기부터 문자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중국지역과 철을 매개로 활발한 교역을 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에 일찍부터 한자가 도입되었다.

그 사실을 증명해 주듯 한자를 상형화한 석조물이 놓여져 있다.

 

 

 

최근들어 유명한 경관거리를 가보면 잘 정비된 가로수 외에 그 거리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형상화한 가로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야의 거리 또한 특색있는 가로등이 길가를 잇는다.

 

 

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불릴만큼 제철기술이 뛰어났으며

양질의 철을 생산하여 무기와 농기구로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철에 뛰어난 고대국가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시대에 이미 철을 왜나 대방 등으로 수출하였다는 것이다.

가야의 거리 2구간에서 볼 수 있는 철기문화 상징 분수의 모습이다.

시기가 겨울인지라 시원하게 내뿜는 분수의 화려한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우뚝솟은 철제검은 가야시대의 웅장함을 확인 할 수 있다.

 

 

가야의 거리 2구간에서 3구간으로 들어서면 소박한듯 정갈한 모습의 국립김해박물관이 보인다.

 

고대국가의 하나인 가야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1998년 7월 29일 개관되었으며,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김해시 구지봉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의 문화재를 집약 전시하고 있다. 

울러 부산경남 지역의 선사시대의 문화상과

 가야의 성장 기반이 된 변한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가야는 다른 고대 국가들에 비해 역사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유물·유적의 발굴을 통해 가야사를 복원 할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김해박물관은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달리

 고고학 중심 전문 박물관으로 특성화 되어 있다.

 

 

찾은 날이 평일인지라 한산한 모습이었는데

마침 어린이집에서 견학나온 아이들의 모습에 한산함의 정적을 지울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옛 선조들의 문화재와 생활상을 거리낌없이 다가가고 느낄 수 있도록

어린이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으며, 놀이공간도 따로 배치되어 있었다.

 

 

국립김해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타박물관과의 다른 독창성과

가야의 거리에 부합되는 통일성을 찾아볼 수 있었던 곳!

 바로 창문전체를 빗살무늬 철제로 에워싸고 있는 모습..

국사책에서 기마병만큼이나 유명했던 빗살무늬 토기를 빗대어 표현한 듯 하다.

 

 

박물관 전시실과 외부를 잇는 통로에도

가야문화의 모습을 사진으로 벽 한켠 한켠마다 배치해두었다.

 

 

 

가야의 모습과 또 하나 통일된 느낌을 부여한 건 바로 이 본관을 모습..

본관은 철광석과 숯을 이미지화 한 검은색 벽돌을 사용하여 철의 왕국 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박물관 입구에도 철제로 만들어진 물품보관소 전면에 가야문화재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물품보관소에 물품을 보관하며 사진 속 문화재의 모습을

박물관 내에서 찾아보는 묘미도 재미있을 듯 하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손을 사용하여 여러가지 도구를 만들게 되었다.

도구 제작은 인류가 자연을 극복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꾸려나가게 되는 첫 발걸음이다.

 

 

여느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토기들의 모습도 보인다.

 

 

 

철제문화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말갑옷은 전투 때 적의 공격으로부터 말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크게 목가리개와 몸통가리개로 이루어져 있다.

 말갑옷은 긴 철판을 여러 매 이어 만들었는데 목가리개는 부채꼴 모양으로 연결하였다.

고구려 벽화무덤에 많이 표현되어 있는 말갑옷의 실물은

마갑총 출토품을 통하여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가야인의 창고에 곡식 등을 저장했던 대형 토기류의 모습도 보인다.

 

 

가야 토기에는 '一','十','二','八' 등과 알아볼 수 없는 여러기호가 새겨져 있다.

이러 기호는 당시 토기를 만든 사람이나 집단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보존처리는 유물의 형태를 되살리기도 하고, 유물의 특징을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판단하기도 하며,

유물의 재질에 알맞은 환경이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들을 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다양한 장비와 약품들이 사용되며,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이외에도 발굴 현장에서 유물을 수습하기도 하고, 보존처리와 관련한 전시와 교육을 실시하는 등

보존과학실 안팎으로 다양한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전까지 진행된 유물 위주의 전시에서 벗어나

사람에 중점을 두어 보존처리에 사용되는 장비를 관찰하고,

 보존처리 사진들을 보면서 어떠한 일들이 진행되는 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가야의 거리 2구간과 3구간의 교차지점 웅장한 듯 보이는 석조물인데 종이 보인다. 

 

 

바로 김해 시민의 종이다.

2007년부터 2009년 9월말까지 33,000여명의 시민이 24억 4천만원을 기탁하여

전액 시민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종이다.

종각은 가야문화의 전통을 계승 발전하는 의미로 가야의 굽다리 접시토기를 현대적으로 디자인 했으며,

우리나라 범종 제작의 권위자인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인 주철장 원광식씨가 제작하여

가야의 설화와 김해의 상징적인 문양을 가미한 독특한 양식이며

종소리 또한 성덕대왕 신종에 비교하여 손색이 없게 제작이 되었다.

 

김해 시민의 종은 무게21톤 높이 8.78m, 직경 2.27m, 하대두께 200mm로 이루어져 있으며

용뉴에는 기마인물형 토기 당좌에는 파형동기 비천상에는 기마인물형 토기와 구름

상대에는 까치와 은행나무 하대에는 수로왕 탄강설화 유곽에는 방패모양으로 문양되어 있다.

 

 

전장터 어디론가를 향하는 철갑옷을 두른 기마와 기마병의 모습을 형상화한 철조물도 보인다.

 

거리 곳곳 가야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볼거리, 느낄거리가 많았던 가야의 거리..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겨울이 지나 다시 돌아오는 따듯한 봄에

재발걸음 하리라 다짐하며

한국의 아름다운 길 가야의 길 그 마지막 이야기를 마친다.